바이러스의 힘, 사람의 힘

 

결국 ‘팬데믹’(PANDEMIC)이 지구촌을 덮쳤습니다. 코로나19의 현황을 알려주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지도’를 보면, 4월6일 현재 이 전염병의 감염자는 183개 나라와 지역에서 127만 명을 넘었습니다. 사망자도 7만 명 가까이 됩니다. 모두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잔인한 4월’입니다.

그럼에도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사망자 숫자가 치솟아 끝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산하 ‘세계 감염병 분석센터(MRC)’는 최악의 경우 미국에서만 220만 명이 숨지고 전체 인구의 80%가 넘는 2억 6800만 명이 감염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상상조차 싫은 규모인데 지나친 과장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만큼 지구촌 전체가 공포와 대혼란 상태입니다.

팬데믹은 ‘모든’을 뜻하는 그리스어 pan과 ‘사람들’을 뜻하는 demos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쓴 페스트(흑사병), 1918년의 스페인독감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페스트는 당시 7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스페인독감으로 숨진 사람도 2500만~50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스페인독감이 덮친 일제 치하의 조선에선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운 742만명이 감염되고, 그 가운데 14만 명이 숨졌다는 기록(조선총독부 통계연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유행병을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해선 안 됩니다. 21세기에도 에볼라, 신종플루, 사스(SARS) 등 귀에 익숙한 질병이 지구촌을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감염자·사망자 규모, 정치·경제적 파장, 정신적·심리적 충격 등 모든 면에서 미증유의 영향을 지구촌에 끼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감염자·사망자 규모, 정치·경제적 파장, 정신적·심리적 충격 등 모든 면에서 미증유의 영향을 지구촌에 끼치고 있습니다.출처 : 존스홉킨스 대학 코로나 지도(사진 클릭 시 확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물리적 거리두기’(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재택근무를 하며 계획에 없던 책 <판데믹 : 바이러스의 위협>(이하 <판데믹>)을 읽었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라야 위기를 헤쳐나갈 텐데, 바이러스와 유행병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워낙 문과생 체질이라 어렵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지은이 소니아 샤가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글을 쓰는 이름난 과학 저널리스트인데다, 역사와 현장 답사기, 체험담 등을 적절하게 버무려 놓아 읽기에 편했습니다.

샤에 따르면, 1940년부터 2004년까지 총 300종 이상의 감염병이 예전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던 장소와 집단에서 새롭게 출연하거나 재출연했다고 합니다. 유행병에 대처하기란 매우 어렵고 곤란한 일이라고 겁먹을 법한 얘깁니다. 그렇지만 샤는 무해한 미생물이 사람에게 위협인 병원체가 되고 대유행병으로 전개되는 과정은 ‘다단계의 여정’이라며 “이 여정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대유행병은 야생동물 몸 안에 있던 미생물이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미생물로 진화하는 데서 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출발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2003년 사스의 경우, 중국 광저우 야생동물 시장의 관박쥐 몸에 살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 사향고양이 같은 다른 야생동물로 전파되며 돌연변이를 일으켜 생겨났습니다. 자연환경에서라면 두 동물은 가까이 있을 일이 없었고 사람의 손길이 닿는 거리에 들어올 일도 없었지만, 동물시장에선 이 셋이 함께 있었습니다.

사향고양이는 사스 바이러스에 취약했고, 복제가 증가하면서 변이와 진화의 기회도 늘어나 사람에게 치명적인 존재가 됐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로 ‘종간 전파’가 이뤄집니다. 환경파괴와 야생동물에 대한 탐욕이 인간과 바이러스의 거리를 좁힌 겁니다.

다음 단계는 ‘확산’입니다. 이 국면에선 세계화, 도시화 등이 주요한 불쏘시개 노릇을 합니다. 2003년 사스는 홍콩의 한 비즈니스 호텔과 현대적인 항공망을 통해 짧은 시간에 팬데믹으로 진행했습니다. 사스 바이러스를 보유한 의사가 이 호텔에 묵었고, 사스는 12명의 다른 투숙객에게로 전파됐습니다. 그리고 이 투숙객들이 싱가포르, 베트남, 아일랜드, 미국 등으로 이동해, 사스는 24시간 만에 5개국으로 퍼졌습니다. 샤는 “한 명의 감염자가 항공기 때문에 전 세계적 집단 발병의 씨앗을 뿌렸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 역시 항공편을 통한 해외감염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가 지금 각국의 중요한 숙제입니다.

인구 밀집 도시, 특히 오염 물질을 제대로 처리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구 밀집 도시는 큰 피해를 불러옵니다. 샤는 인구 밀집, 즉 과밀화가 병원체에 세 가지의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고 설명합니다. 우선 전염률을 급격하게 증가시킵니다. 둘째로, 전파될 수 있는 인구집단이 크니 더 오랫동안 타오릅니다. 이런 전염률 증가와 장기화를 통해 무엇보다 병원체는 더욱 치명적인 존재로 진화합니다.

 

팬데믹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사회의 약자들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출처 : 도서출판 나눔의집, <판데믹-바이러스의 위협>

 

대체로 여기까지는 흔히 접할 수 있는 팬데믹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샤는 “종간 경계를 넘어 전파되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는 분명 위험한 존재이지만, 그것은 사실 대유행병으로 향하는 여러 단계의 여정에서 겨우 절반에 이르렀을 뿐이다. 여정의 나머지 절반의 운명은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 걸음 나아갑니다.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 달리 말해 인간의 ‘협동 능력’이 어느 정도의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런 문제의식이야말로 <판데믹>이 지닌 뛰어난 미덕입니다. 샤는 대유행병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특별히 공격적인 병원체가 수동적이고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희생자를 이용했거나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엄청난 전염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협동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가 문제 삼는 실패의 양상은 먼저 정보의 은폐, 즉 ‘부패’입니다. 병원체 발견의 초기 단계에서 국가가 이를 숨기고 왜곡하는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전염병의 역사에서 이런 부패상은 너무나 쉽게, 지속적으로 확인됩니다.

2002년 중국 당국은 사스 발생을 국가 기밀로 취급했고, 2003년 광저우의 한 시민이 이메일을 통해 친구에게 이 지역의 전염병에 대해 얘기하고 나서야 국제사회는 사스의 출현을 알게 됐습니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을 처음 발견한 제다의 바이러스 전문의를 입막음하려다 들통이 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사태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의 존재를 친구들에게 맨 처음 알린 우한의 의사 리원량을 탄압하지 않았다면 사태의 양상은 지금과 사뭇 달라졌을 겁니다.

부패 못지 않은 협동 능력의 실패는 난폭한 희생양 만들기, 빗장 걸어 잠그기 같은 사회적 유대의 파괴입니다. 샤는 이를 ‘비난’이라 부릅니다. 그는 “사회적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적절하고 건강한 반응은 우리끼리 더 가까이 뭉쳐서 손에 손을 맞잡고 침입자에 맞서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전염병은 비평가 수잔 손탁이 말한 것처럼 ‘도덕과 예절의 거침없는 붕괴’를 발동시킨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 앞에서도 ‘도덕과 예절의 붕괴’ 양상은 뚜렷합니다. 마스크와 세정제, 휴지는 물론이고 물과 식품까지 사재기가 지구촌 전체에서 횡행합니다. 이런 용품의 가격이 폭등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경제적 약자는 이중의 고통을 겪습니다. 미국에선 ‘패닉 구매’가 총기류의 사재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립니다.

협동 능력의 상실은 국제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보다는 각자도생을 모색하기에 바쁩니다. 특히 지구촌의 두 거인인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 발생의 책임을 놓고 갈등을 지속하면서 글로벌 위기를 타개할 글로벌 리더십의 실종이 염려스럽습니다. 3월 중순 <뉴욕타임스>는 “세계 지도자들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합창보다는 불협화음에 가깝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코로나19 사태는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돼 의학적 대처가 가능해져야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그 단계가 되면 코로나19는 그렇고 그런 독감 정도로 치부되며 우리를 크게 위협하지 못하겠지요. 문제는 적어도 1년은 필요한 치료제 개발 및 상용화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의 가치관과 행동기준이 어떠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우리의 삶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를 테니까요.

먼저 필요한 것은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인식의 전환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60% 정도가 감염돼야 위협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문가 지적처럼 코로나19는 짧은 기간에, 완벽하게 박멸할 수 없습니다. ‘정복’이 아니라 ‘감소’와 ‘관리’의 대상입니다. 샤는 “전 세계적 생물군과 병원체가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보균자다”라고 얘기합니다.

따라서 당장은 ‘물리적 거리두기’와 적극적인 대규모 진단 등을 통해 감염 확산 저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한편으로 멀리 보며 장기전도 대비해야 합니다. 코로나19 대처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3월22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얼마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 열심히 하면 조기 종식이 가능하고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바람은 소모적인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두 번째는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신뢰의 증대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초반에 한국은 급격한 확진자 증가로 지구촌에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정보가 소상히 공개되고 나니 다른 나라가 따라오기 힘든 대규모 진단의 결과임이 확인됐습니다. <사피엔스>를 쓴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한국을 감염 확산 저지의 성공 사례로 꼽으며 “일부 접촉자 추적시스템을 이용하긴 했지만, 광범위한 검사와 투명한 보고, 정보를 잘 습득한 대중의 자발적인 협조에 훨씬 더 많이 의존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정보가 투명하고 신뢰가 쌓여야 팬데믹에 맞서는 협동 능력이 커집니다.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 용어로 ‘인포데믹’(infodemic)이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가 빠르게 퍼져 질병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상황을 뜻합니다. 50여명의 집단 감염을 불러온 성남 ‘은혜의 강’ 교회의 소금물 세척사건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소금물이 코로나19에 효과적이라고 잘못 알고 교회 입구에서 확진자 신도의 입에 분무기로 소금물을 뿌린 뒤, 이 분무기를 소독하지 않은 채 다른 신도들에게도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바이러스의 슈퍼전파 장소가 됐습니다.

국제 협력 또한 중요한 원칙임을 상기해야 합니다.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감소와 관리의 대상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나라가 거미줄처럼 얽힌 세상에서 어느 한 나라나 지역이 일시적으로 코로나19를 붙잡는다쳐도 언제 해외에서 바이러스가 다시 들어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1년이고 2년이고 마냥 외부와 빗장을 걸을 수는 없겠지요.

더욱이 방역 이상으로 중요한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해서도 국제 협력은 필수적입니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의 여파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상의 경제 쇼크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의 생산 활동이 멈춰섰고, 교역 또한 크게 줄었습니다. 그 여파로 실업률은 가파르게 치솟습니다. 주요 국가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우려하며 ‘헬리콥터 살포’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자금을 풀고 있습니다. 개별 국가 단위의 이런 노력이 성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서로 협력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지구촌은 국제 교역 규모가 전 세계 지디피의 60%에 이르는 초연결 상태니까요.

무엇보다 코로나19는 각 나라의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과 함께 ‘코로나 이후’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것이야말로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르며 우리가 얻어야 할 코로나19의 교훈입니다.

코로나19 앞에서 모든 나라들은 공공의료와 방역체계, 정부와 지도자의 리더십, 자유와 투명성, 시민의 참여와 협력 등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시험받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성적표는 부끄럽고 초라합니다.

특히 팬데믹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사회의 약자들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 감염의 위험 속에서 일손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 취약한 사회안전망에조차 기대기 힘든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2020년 봄, 계절의 따사로움을 느끼기엔 몸과 마음이 너무 얼어붙었습니다. 그렇지만 코로나19의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는 힘은 결국 ‘사람’임을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샤는 팬데믹의 미래가 인간에게 달려 있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건강은 야생과 가축, 생태계의 건강과 연결돼 있다. 궁극적으로 대유행병을 예방하려면 대유행병을 악화시키는 인간의 활동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걸어가면 좋을지 캐나다 의사 아브두 샤카위(Abdu Sharkway)의 글로 대신 전합니다. 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3월 초 올린 글은 20여 일 만에 200만 회 넘게 공유되며 지구촌의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바이러스의 힘에 맞서는 사람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3월 초 올린 글은 20여일만에 200만회 넘게 공유되며 지구촌의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출처 : 아브두 샤카위 페이스북

 

※ 아래의 번역글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텔렌보스대학에서 포스닥 펠로우를 하고 있는 장영욱 선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렇게 생각을 나누고 협력합니다.

 

저는 의사이자 전염성 질환 전문의입니다. 저는 20년 이상 매일같이 환자들을 봐왔습니다. 저는 도심가의 병원에서도, 아프리카의 빈민가에서도 일해봤습니다. HIV-에이즈, 간염, 결핵, 사스(SARS), 홍역, 대상포진, 백일해, 디프테리아…. 제가 일하면서 접해보지 않은 전염병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사스(SARS)를 제외한 다른 질병들은 저를 압도하거나 두렵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Covid-19(코로나19)가 두렵지 않습니다. 물론 저는 이 신형 병원체가 전 세계에 퍼져 가는 것을 걱정합니다. 저는 이 새로운 재난에 의해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노약자들과 건강하지 않은 분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Covid-19 자체는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성의 상실과 두려움의 범람입니다. 이는 주문에 사로잡힌 듯 터져 나오는 공황과 종말 이후의 세계에나 나올 법한 지하벙커를 채우기 위해 물자를 사재기하는 게 두렵습니다. 일선 의료진에게 필요한 N95 마스크가 병원과 긴급진료소에서 도난당하는 상황이 두렵습니다. 도난당한 마스크는 공항에서, 쇼핑몰에서, 카페에서 사용되고, 이는 더 큰 두려움과 의심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Covid-19 증상이 없는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몰려와서 실제로 고통받는 이들-심부전, 폐기종, 폐렴 및 뇌졸중을 앓는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게 두렵습니다.

저는 여행 제한의 범위가 너무나 넓어지고, 결혼식이 취소되고, 졸업식을 못하게 되며, 가족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무역을 제한하고, 수많은 분야에서 파트너십과 사업 기회를 망쳐버리고, 결과적으로 세계적 불황으로 이어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두려움은 위협에 맞선 우리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입니다. 이상과 합리와 열린 마음과 이타심 대신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포에 질리라고, 두려워하라고, 의심하라고, 반동하라고, 이기적으로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Covid-19는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당신 바로 옆에 있는 도시로, 병원으로, 친구에게로, 가족에게로 올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놀랄 만한 상황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바이러스 자체는 우리에게 들어와도 큰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행동,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태도가 더 비참한 재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간청합니다. 두려움을 합리로 이겨내고, 공포를 인내로 이겨내며, 불확실함을 정보의 습득으로 이겨냅시다. 우리는 이 기회를 통해 보건 위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것이며 어떻게 우리 사회에 퍼진 수많은 전염병을 관리할지 알아낼 것입니다. 우리 서로를 향한 연민과 인내심으로 이 도전에 함께 맞서기로 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 사실과 지식을 추구하는 끈질긴 노력으로 근거 없는 추측과 어림짐작과 끝없는 망상을 극복합시다.

두려움 대신 사실을, 깨끗한 손과 열린 마음을.

우리 아이들이 우리에게 감사해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