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1열에서 보는 코로나시대의 영화들

‘콜레라시대의 사랑’도 아니고, ‘코로나시대의 영화’를 소개하려니 한숨부터 나온다. 에휴휴…(앗! 한숨 쉴 때도 마스크를 써야 하나?) 원래 좀비영화나 재난영화를 크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특히 바이러스로 도시가 초토화되거나 인류가 멸망하는 이야기는 좀처럼 보지 않는 편이라, 이번 기회에 한꺼번에 그런 영화들을 찾아보면서 독한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어질어질했다.

‘우한 폐렴’에서 시작해 ‘코로나19’가 되기까지 병명을 몇 번이나 바꾸면서 이 바이러스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전 세계를 초토화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친구를 만나 밥 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수업을 받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그나마 대면 접촉을 피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온라인 활동이다보니 나도 이번 기회에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플레이 등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 죄다 가입해 집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넘치게 보고 있다.

영화 속 분당 봉쇄와 현실의 대구 봉쇄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 단계에 이르기 전, 케이블TV와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경쟁적으로 바이러스 소재의 영화들을 무료로 풀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 를 보았다.

(출처: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 단계에 이르기 전, 케이블TV와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경쟁적으로 바이러스 소재의 영화들을 무료로 풀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 <감기>를 보았다. 수애와 장혁이 나오는 우리나라 영화다. 불법체류자들을 싣고 오던 컨테이너에서 시작된 감기 바이러스가 분당 일대에 퍼지고, 사람들은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대통령은 내각들과 미군정의 압력에 못 이겨 분당을 봉쇄한다. 멀쩡한 사람들도 환자로 만들기 딱 좋은 아비규환에서 여의사와 소방대원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영화 속 감기에 걸린 첫 환자가 약국에 와서 기침을 할 때, 침의 파편이 튀는 장면을 CG로 다소 과장되게 보여주는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아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과장이 심한 것 아니냐며 콧웃음 쳤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보는 침 튀는 장면은 공포 그 자체였다.

영화를 보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네이버 검색어 1위에 ‘대구 봉쇄’가 올라왔을 때는, 영화 속에서 분당을 봉쇄시키자던 정치인들과 미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화가 현실인지, 현실이 영화인지 구분하기 힘든 날들이다.

바이러스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들의 고군분투

<감기>가 분당을 봉쇄했다면, <부산행>은 부산을 봉쇄했다. 이 영화에서 부산을 봉쇄하는 이유는 시민들을 지키고, 좀비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서다. 좀비? 그렇다, 바이러스 영화의 원조는 좀비 영화다. 그 중에서도 <부산행>은 초반에 차에 치여 죽은 노루가 꾸물꾸물 살아나는 장면을 통해 이 모든 비극이 바이오센터의 실수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주인공 공유는 그 부실 바이오센터에 투자한 증권거래인으로 나온다. 좀비들이 득시글한 부산행 KTX 안에서 그는 부하직원의 전화를 받는다. “이 모든 일이 유성바이오에서 시작됐대요. 우리가 작전 걸어서 억지로 살려낸 유성바이오요. 과장님, 이거 우리 잘못 아니죠?”하며 절규한다.

질병과 건강과 농업과 기업과 증권이 별개가 아니라 다 하나로 엮여 돌아가는 것이 현대사회라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가 분당을 봉쇄했다면, 은 부산을 봉쇄했다. 이 영화에서 부산을 봉쇄하는 이유는 시민들을 지키고, 좀비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서다.

(출처: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한국의 아버지가 업무적으로는 비윤리적이지만 딸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쳤다면, 미국의 아버지는 정의로운 UN 소속으로 가족을 위해 해결책을 찾는다. 헐리우드 좀비액션영화 <월드 워 Z>는 브래드 피트가 목표를 향해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게임 같은 영화다. 언데드 바이러스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남한 평택의 미군부대로 가는 게 스테이지1, 예루살렘으로 가는 게 스테이지2 하는 식으로 차츰 난이도를 높이다가 마지막에는 홀홀단신으로 세계보건기구 연구센터에서 마지막 게임을 치른다. 매 단계 미션 클리어의 쾌감을 주면서도, 훈훈한 해결책이 제시되어 안도감을 함께 선사한다. 그 해결책 또한 자연의 상식에 기반한 카무플라주(위장) 기법이라 그럴싸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런 방법으로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영화 속 해결책이 그대로 현실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 영화와 현실이 달라 안타깝지만, 영화와 현실이 달라 좋은 점도 있다. 영화 속 좀비 바이러스는 급격히 번지고, 치사율이 높고, 잠복기가 12초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4~14일이고,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헐리우드 좀비액션영화 는 브래드 피트가 목표를 향해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게임 같은 영화다.

(출처: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영화의 교육적 목적을 달성한 <컨테이젼>

영화와 현실이 너무나 똑같아서 소름끼쳤던 영화는 <컨테이젼>이다. 이 영화는 2011년 작품인데, 그 당시에 누군가 미래로 와서 이번 코로나 사태를 미리 보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현실과 판박이다. 이 영화도 <감기>처럼 첫 장면에서 기네스 팰트로가 기침을 한다. 과장된 CG가 동원된 것도 아닌데, 그녀가 땅콩접시에 기침을 하고, 휴대폰으로 기침하면서 통화하고, 신용카드를 내밀어 계산하는 그 모든 장면에서 “하아…” 깊은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는 그 때 서빙했던 직원, 신용카드를 받아 계산했던 직원이 모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항에서 흩어진 그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도쿄, 런던, 미네소타의 인구수가 얼마인지 화면 하단에 계속 보인다. 여기서 ‘재생수’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한 사람이 몇 단계를 거치면 몇 명의 사람들을 감염시키는지를 계산하는 법이다.

영화 속에서 기네스 팰트로는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웠는데, 나중에 감염경로 조사를 하면서 그 사실이 들통 난다. 우리나라 확진자 중에도 그런 곤란한 경우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 또한 현실과 판박이다.

SNS에서, TV에서, 라디오에서, 버스 안내판에서 지겹게도 교육시키는 손 씻으라, 마스크 쓰라, 증상이 있으면 자가 격리하라는 말들이, 이 영화에도 반복된다.

본격적인 전염이 일어나고부터는 정보를 먼저 쥔 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써갈겨댄 가짜 뉴스,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감염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달려간 역학자들의 자기 희생, 감염으로 죽은 가족들의 장례식에 대한 고민 등 소소한 일상의 문제부터 국제적인 정세까지 낱낱이 보여준다.

영화와 현실이 너무나 똑같아서 소름끼쳤던 영화는 이다.

(출처: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백신이 개발된 뒤, 이를 공정하게 나누기 위해 생일에 따라 백신주사 맞는 날짜를 추첨하는 부분이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마스크 5부제를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현실적이었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첫 감염의 원인이 박쥐였기 때문이다. 박쥐가 살던 숲이 파괴되자, 박쥐는 민가로 날아왔고, 자신의 바이러스를 축산용 돼지에게 떨어뜨린다. <부산행>의 공유가 바이오회사의 주식을 작전하는 세력이었다면, <컨테이젼>의 기네스 팰트로는 숲을 파괴하고 공장을 지은 다국적 기업의 직원이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감정은 다들 비슷하다. 너무나 현실적이라 영화 보고난 뒤 악몽을 꾸거나 영화를 통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거나, 혹은 둘 다거나. 나도 그랬다. 영화의 교육적 목적을 확실하게 달성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돌보는 자의 말 못할 고통

<컨테이젼>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사람은 역학 조사를 하기 위해 현장을 발로 뛰다가 희생된 역학자 케이트 윈슬렛이다. 역학이라는 게 병의 사회적인 구조를 밝히는 작업이라 환자들을 직접 대면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감염의 가능성은 항상 있다.

노벨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눈먼자들의 도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며칠 상간에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실명하는 시대에 혼자 눈이 보이는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눈 먼 남편을 수발하기 위해 눈이 멀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용소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눈 먼 자들에 둘러싸여 그들을 씻겨주고, 끌어주고, 돌봐준다.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세상에서 혼자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말도 못할 고통이다. 그야말로 말도 못하는, 즉 그걸 고통이라고 발설할 수도 없는 고통이다. 그녀 혼자 눈이 보인다는 걸 알면 어떤 해꼬지와 공격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를 보는 내내 지금 확진자들을 돌보고 있는 의료 관계자들, 방역자들, 공무원들이 떠올랐다. 더불어 그들이 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삼키고 있는 고통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포항의 어느 병원에선 간호사들이 집단 사표를 냈다. 환자를 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과로와 박봉에 시달리며 일해 온 그 간호사들을 탓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의료진들에게 힘내라고 후원과 온정이 답지하고 있지만, 그 온정만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눈먼자들의 도시>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락가락한다.

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사람은 역학 조사를 하기 위해 현장을 발로 뛰다가 희생된 역학자 케이트 윈슬렛이다.

(출처: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사람들이 무서워하면서도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뭘까? 대개는 한여름에 공포영화를 보면 긴장했다가 풀어지면서 땀이 증발해 체온이 내려가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에 바이러스 영화를 보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실질적인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간접경험이며,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대처능력을 키워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분명히 간접경험이 되고, 공감도 되며, 교육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을 보고 자면, 뒤숭숭한 잠자리를 경험할 수 있으니 되도록 밤보다는 낮에 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재난영화를 보며 간접경험을 하기보다 힐링 영화를 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편이 더 유익하다고 본다. 만약 이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앞으로 한 달을 더 간다면, 다음 달에는 코로나 시대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영화를 추천하게 되는 건 아닌지…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 무엇도 이 사태가 진정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지는 않다. 재난영화든 힐링영화든 방구석1열 보다는 극장에서 남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 제발 바이러스가 진정되어 학교와 평생교육원의 개학이 더 이상 미뤄지지 않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추천목록 (체감도 높은 순)

컨테이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 맷 데이먼, 케이트 윈슬렛, 기네스 팰트로 출연)

감기 (김성수 감독 | 장혁, 수애, 박민하 출연)

월드워Z (마크 포스터 감독 | 브래드 피트, 미레유 에노스 출연)

부산행 (연상호 감독 | 공유, 김수안, 정유미, 마동석, 김의성, 최우식 출연)

눈먼자들의 도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줄리안 무어, 마크 러팔로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