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전염과 상황의 학습

지나간 겨울, 눈 덮인 관악산 풍경을 거의 보지 못했다. 관악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던 칼바람도 무딘 겨울이었다. 겨울이 물러간 4월 관악산 자락에는 어김없이 산수유, 진달래, 목련, 벚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봄은 아직 오지 못했다. 겨울 끝자락에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자리 잡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 마음의 봄기운을 꽁꽁 붙들어 매고 가두었기 때문이다.

교문을 열지 못한 초등학교 담장의 개나리는 아이들과 제때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봄바람을 몰고 온 신입생 환영 모임으로 떠들썩해야 할 초저녁 대학가는 문 닫은 가게들로 을씨년스럽다. 남녘에선 봄꽃 맞으러 오는 여행 손님이 두렵다는 소식이 올라온다. 갑자기 울리는 휴대전화 재난 문자에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는데, 19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사태 때 보다 더 큰 사회경제적 위기가 닥친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 설상가상이다. 눈 없던 겨울 끝에 찾아온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활력을 잃은 사회 위에 경제 위기라는 서릿발이 내리는 형국이다.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우리는 2020년대를 시작하고 있다.

가족과 동료, 친구 사이에서 먼저 퍼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초래하는 상황은 비말이라는 단어의 낯섦 만큼 비현실적이다. 대구의 한 음압 병실에서 치료를 받던 어떤 여인은 함께 확진 판정 받고 격리됐던 남편의 부고를 받고도 영정 사진 앞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일어난 어느 정신병원 보호병동이나 고령자, 장애인을 위한 집단시설, 콜 센터 사무실의 취약한 환경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전 지구를 하나의 촌락으로 연결하던 공항이 입국자를 가로막고 격리하는 곳이 되었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에 투입된 군인들이 요양원에 버려진 노인과 침대에 방치된 시신을 대거 발견했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6000천만 명 국민 전체에게 이동 제한 명령이 내려졌다. 자가 격리 조치를 어긴 이들에게 수 백 만원에서 수 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나라들도 있다. 갑자기 불어 닥친 눈 폭풍이 산 아래 동네들을 휩쓸어가듯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 우리나라,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등 지구 북반구 곳곳에서 사람들을 가두고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열대 지방과 남반구의 따뜻한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급기야 도쿄 올림픽까지 연기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 ‘생각의 전염’도 빠르게 일어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 ‘생각의 전염’도 빠르게 일어났다. 대중교통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마스크 쓰기, 1830 손 씻기, 2미터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행동 수칙을 지키자는 생각은 바이러스 보다 더 빨리 퍼졌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1830 손 씻기이다. 하루 여덟 번 30초씩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을 씻자는 행동 수칙을 쉽게 기억하려고 만든 것이 1830 손 씻기이다.

1830 손 씻기는 2000년대 중반 노로 바이러스로 인한 식중독이 유행할 때 시작된 캠페인이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노로 바이러스는 아직 백신도, 치료약도 없다. 감염되었다가 회복되어도 평생 면역이 형성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걸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는 매해 2천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7만 명 이상이 입원 치료를 받으며 약 8백 명 정도가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로 바이러스에 오염된 조리 환경이나 식재료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감염의 주요 경로는 손이다. 손만 잘 씻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1830 손 씻기로 세균과 바이러스 99% 이상을 없앨 수 있다고 한다. 한 번 손 씻고 다음 번 손 씻을 때까지 얼굴을 만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입과 코, 눈을 통해 바이러스가 몸 안으로 침입하기 때문이다. 손 씻기를 외면한 채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더 높일 수도 있다. 마스크를 쓰고 벗을 때 바이러스가 손에서 얼굴로 쉽게 옮겨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초래한 ‘생각의 전염’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역 이름과 나라 이름을 붙여 무슨 폐렴이라 부르고, 몇 번 환자, 어떤 집단 혹은 지역이 문제라는 생각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쉽게 퍼진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그런 생각이 과연 얼마나 기여했을까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확실히 기여한 바는 따로 있다. 남 탓과 혐오를 부추기고 확산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을 조장하는 생각의 전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단순하고 얕은 생각이라는 게 곧 들통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은근히 내려다보는 생각도 쉽게 전염된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갑자기 격리되고 푸대접을 받았다는 뉴스나 생필품 사재기에 나선 미국인들에 대한 뉴스가 그런 경우다. 기본적인 예의나 품격이 부족한 나라라거나 사재기에 나서지 않는 한국인이 미국인 보다 시민의식이 더 높다는 생각이 뉴스에 덧붙여져 전파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자기 이웃에 격리 시설이 지정되는 것을 막아서는 일이 분명 있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시민의식 덕분이기도 하지만 늦은 밤 스마트 폰으로 주문한 물건이 다음날 새벽 거짓말처럼 문 앞에 놓여있는 택배 시스템 때문은 아닐까? 미국엔 한국처럼 골목골목을 누비고 4층 5층 다세대 주택 계단을 매일 밤낮으로 오르내리는 택배 시스템이 없다.

밤샘 배송에 나섰다가 어느 빌라 계단에서 유명을 달리한 40대 택배 노동자 뉴스는 이 거대한 위기 속의 안온한 일상이 누군가의 고강도 노동 덕분에 지탱되고 있다는 걸 일깨운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세계적 대유행 단계에 접어든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가 완전히 진정되는 데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안전성이 검증된 치료약의 개발, 예방을 위한 백신의 개발도 필요하지만, 아주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면역된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사태가 끝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어쩌면 노로 바이러스처럼 백신도, 치료약도 나오지 않아 철저한 예방에 힘쓰는 것만이 유일한 방책일 수도 있다.

감당하기 쉽지 않은 어려움 앞에 마주설 때 우리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의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촘촘한 타자와의 관계망에 의존해 자신이 온전하게 존재해 왔다는 것을 비로소 체감한다. 자기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공무원들의 투철한 직업의식과 바이러스 확산 상황을 장악하며 최전선에서 분투하는 보건의료인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의 일상이 이만큼이라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한다. 상황의 악화를 막고 조금씩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이러스 유행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훨씬 더 위협적이며, 그들을 더 고달프고 힘겨운 지경에 처하게 한다는 것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이 초래한 ‘상황의 학습’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 사태를 극복하는 궁극적 힘이 사회적 연대라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가 권장한 행동 수칙을 준수하는 게 조금 불편하고 힘 들어도 사회적 연대 의식을 갖고 동참해야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사회적 연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몰고 오는 거대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응하는 근본 대책이기도 하다. 얼굴을 마주 대하는 모임을 전부 취소하고 길을 걷다가도 마주 오는 사람을 멀찍이 피하는 것이 일상이 된 이 사회적 격리의 시대에 사회적 연대를 두텁게 할 방안을 찾아내고 전파하는 것, 2020년대를 시작하는 평생교육의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